올들어 가장 무더운 날이었던 지난 토요일(7월 9일)
그이와 안동 하회마을길 트레킹을 다녀왔다.
안동 전통한지 체험장 앞에서 부터
소산마을 --> 풍천배수장 --> 병산서원 --> 만송정
--> 부용대--> 하회장터 --> 종합안내소까지
약 14.5Km를 걸었다.
사과 나무 밭 전체를 망을 씌워 놓은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새들도 사과를 좋아하는듯...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강둑길을 따라...
붉은 산딸기가 발길을 붙들고...
중리제 제방을 따라...
낙동강의 강폭이 아주 넓었다.
풍천배수장에서 병산서원 가는 길은 흙길이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지나가던 트럭이 서더니
병산서원까지 한참가야 한다며 우리보고 타라고 하였다.
무더위에 걷는 우리들이 안쓰러웠나보다.
호의는 고맙지만 일행이 있다고 사양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였다.
장맛비로 강물은 흐렸지만
드넓은 강변이 인상적이었다.
강가를 따라...
출렁다리도 건너고...
한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두발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이런길을 걷는 것이 트레킹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병산서원까지 가는 46번 시내버스가
흙먼지를 날리고...
요즘 왠만한 시골길도 다 포장이 되어 있는데
이곳은 오히려 포장되지 않아서 좋았다.
드디어 출발한지 1시간 40여분 만에 병산서원에 도착하였다.
병산서원의 배롱나무꽃이 예쁘다고 하였는데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병산서원은 도동서원, 도산서원, 소수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조선시대 5대 서원에 꼽힌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선조8년(1575)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라고 한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 뒤 1614년에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세우면서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된 후
철종 14년(1863)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 하나라고 한다.
복례문을 지나니 만대루가 보인다.
만대루는 병산서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200여명이 앉을 수 있으며
'만대'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는 뜻의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아담하면서도 정갈해 보인다.
오른쪽 나무에는 살구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자연을 들여놓은 입교당 창문은
한옥의 아름다움중의 하나인것 같다.
입교당 마루에 앉아 바라본 만대루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만대루에 올라가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수령이 400년 가까이 되는 배롱나무
배롱나무꽃이 만발할때 오면 정말 장관일것 같다.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 물길을 끌어 들어 만든 '천원지방(天圓地方)' 형태의 연못인 광영지.
천원지방은 우리나라 전통 연못의 조성 원리로
조상들의 우주관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며
땅을 의미하는 네모진 연못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두었다.
병산 서원앞 공원의 나무 그늘 아래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기전 복례문 앞에서 나의 흔적을 담아 보았다.
언제 또 오게 될른지 모르지만
그때는 배롱나무꽃이 만발하였을때 들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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