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나들이
2019년 3월 17일(일), 그이랑 속리산에 다녀왔다.
그이 중학교 동창모임이 속리산에서 있었는데
속리산에 가본지 오래된 나를 위해
나들이 삼아 같이 가자고 하여 동행을 하였다.
그이는 중간에 친구들 만나 합류하고
나는 복천암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따스한 햇살아래
세심정 옆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에 앉아
준비해간 빵과 차로 점심을 먹고 내려와
법주사 경내도 돌아보고
3시경 그이 만나 집으로 향하였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
600 여년 세월을 잘 견디고 있었다.
오른쪽 돌로 표시된 부분이 속리산 옛길이란다.
속리산은 해발 1,057m의 천왕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렀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호서제일가람, 속리산 대 법주사>
일주문의 현판은 1903년에 썼다고 한다.
입장료(4천원)를 내고 들어서면
왼쪽으로 2016년 9월에 개통하였다는 걷기 좋은 세조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세조길은 1450년경 조선의 7대왕이었던 세조가 직접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로
세심정까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세조가 바위 아래 그늘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자리로
속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비바람과 한 낮의 더위를 피하던 장소라고 한다.
생긴 모습이 마치 사람의 속눈썹을 닮았다가 하여 눈썹바위라고 불리고 있단다.
달마암 가에 등불 하나 밝혀두고
문열고 향사루며 마음 다시 맑히네
홀로 깊은 밤 앉아 잠 못 이루자니
창 앞 물소리 솔바람과 함께 들리네
김구용(1338-1384)의 칠언절구로 지은 <속리사>라는 시
그이는 작년 가을 회사 워크숍이 있어 왔다가 세심정까지 걸었었는데
이곳의 가을 단풍도 아름답다고 하였다.
저 멀리 거북바위가 있다는 수정봉
카메라가 작동이 잘 안되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써비스센터에 다녀와야할듯 싶다.
그동안 잘 썼는데...
이곳을 지나자 마자 그이는 친구들을 만나 동행하였고
나 홀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세조가 목욕을 했다는 목욕소
마두암, 말 머리 모양이 선명하다.
속(풍속俗) 리(떠날離) 산(뫼山) 세(씻을洗) 심(마음 心) 정(정자亭)
세속을 떠난 산에서 마음을 씻는 정자(터)란 뜻으로
세속을 떠나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는
지금의 현실문제, 즉 사업문제, 직장, 가정문제 등
복잡하고 힘든 문제들을 저 산 밖에 내려 놓고
이 곳에서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
내 앞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을 즐기라는 뜻이라 한다.
속리산은 국토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낙동강으로
남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금강과 하나 되며
서쪽으로 흘러든 물은 남한강으로 흘러든다고 하였다.
세심정을 지나 복천암으로~
담장아래 현호색도 만나고~
고려 31대 공민왕과 조선 7대 세조임금이 다녀갔다는 복천암
마음 같아서는 문장대까지 오르고 싶었으나 오늘은 이곳까지였다.
20대때 문장대에 올랐던 기억이 어렴풋하여
언제 다시 한 번 문장대에 오르고 싶다.
세심정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천왕봉 오르는 길이었는데
2개의 절구가 보였다.
이 절구가 실제로 사용되었던 시기는 13C~14C로 추정되며
이곳 지형을 이용한 물레방아 형태로 곡식을 빻아서
밥과 떡과 곡주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맑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는데
내마음도 저절로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이곳 바위에 앉아
따뜻한 차와 빵을 먹으며 30여분 쉬었다.
다음엔 천왕봉도 오르고 싶다.
내려오는 길에 들린 법주사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7개 사찰중 하나로
서기 553년 창건되어 15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찰이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록된 사찰은 법주사와 함께
해남 두륜산의 대흥사, 순천 조계산의 선암사,
공주 태화산의 마곡사, 안동 천등산의 봉정사,
영주 봉황산의 부석사, 양산 영축산의 통도사가 있다.
1990년 청동을 사용하여 복원한 후 2002년 개금한
높이 33m, 무게 160톤의 금동미륵대불.
국보 제55호인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조선 인조 4년(1626년)에 다시 지어졌는데
조선의 승병장인 사명대사가 주관하였다고 한다.
이후 1968년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탑이라고 한다.
건물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모셔져 있다.
단청의 색이 바래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도 듣기 좋았다.
대웅보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던 쌍사자 석등은 국보 제5호로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단다.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쌍사자와 하대 연화석이 하나의 돌로 조각하였다.
오후 2시경, 그이가 모임이 거의 끝나간다고 전화가 와
법주사를 뒤로 하고 옛길인 오리숲길로 내려왔다.
속리산 조각공원에 있던 황귀선 향토시인의 시비 <세월이 지나간 보은의 찬가>
저기 청수교는 여름이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분수터널이 된다고 한다.
청수교에서 바라 본 풍경으로 저멀리 속리산의 능선들이 보인다.
정이품송이 있는 곳까지 걸어 그이를 만났고
속리산으로의 즐거운 나들이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날씨도 좋았고
정이품송을 보며 윤민이가 생각나기도 하였다.
윤민이 어린시절(1살때), 처음으로 산 차(르망)를 타고 이곳으로 나들이를 와
정이품송 앞에서 사진도 찍었었는데...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