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성곽길 한바퀴
2021년 8월 22일(일) 오후 3시경 집을 나서 공주에 다녀왔다.
그이 고향 친구들 부부동반 번개모임이 있었는데 오후 4시에 만나 스크린 골프를 한 후 저녁모임을 한다고 하여 동행하였다.
마침 모임 장소가 공산성 근처라고 하였고 나는 골프를 못하기에 그동안 공산성 성곽길을 걷고 있겠다고 하였다.
그동안 몇 번 공산성을 갔었지만 성곽길 전체 한바퀴는 못돌았기에 이번에는 성곽길을 따라 한바퀴 돌았다.
중간 중간 쉬기도 하면서 약 3시간 가량 나 홀로 잘 놀았다.
<공존/임립 : 백제 시대의 유물인 연화문을 모티브로 하여 '뫼비우스의 띠' 형상으로 이미지화 시킨 작품>
마침 2021 백제 세계유산 축전이 8월 13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되고 있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2015년 7월, 우리나라 12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3개 지역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이들 유적은 475년 ~ 660년 사이, 백제 왕국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데 공주시에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에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관북리유적, 부소산성, 익산시에 미륵사지, 왕궁리유적지 등이 포함 된다고 한다.
<금서루>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년)을 대표하는 왕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다.
<금서루에서 바라본 풍경>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인해 문주왕 원년(475)에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고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다고 한다.
<금서루와 공산정>
공산성은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고 한다.
금강에 접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되었는데,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에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현재는 동쪽의 735m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석성이라고 한다.
성의 길이는 총 2,660m 이고 동서남북 네 곳에서 문 터가 확인되었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었고, 1993년에 동문과 서문을 복원하여 각각 영동루와 금서루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왕궁터에 있는 백제시대 인공 연못~
멋진 수형의 왕벚나무~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이자 정문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고쳐 지었지만 그 위치와 모습은 본래의 것으로 지금 있는 성문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고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공산성의 동문인 영동루~
동문 밖에는 만아루지가 있었는데 '만아루'라는 누각이 있었던 곳이란다.
백제 토성으로 알려진 토축 성벽 구간은 광복루와 동문지 주변의 외성으로 불리는 부분으로 토축 성벽은 돌로 바닥의 기초를 쌓은 후 벽체는 진흙과 모래흙을 교대로 다지면서 쌓아 올렸다고 한다.
동쪽 성벽에서 바라본 공주 시가지~
동문인 영동루를 배경으로~
공산성 동쪽 가장 놓은 곳에 있는 2층 누각인 광복루는 공산성 안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의 문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이라 하였다고 한다.
1945년 광복 이후 공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보수하였고 이듬해인 1946년 4월에 김구, 이시영 등이 공주를 방문하여 이곳을 둘러본 후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을 '광복루'로 고쳤다고 한다.
성벽길은 걷기에 좋았고 북쪽으로 향하며 금강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금강 건너로 보이는 공주신시가지~
대전 방향 금강과 금강대교~
금강철교와 백제큰다리~
이곳에서 한참을 쉬었다.
연지가 있는 만하루로 향하는 길은 가파랐다.
만하루 앞 연지는 공사중이어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다시 성벽을 오르며 뒤돌아 본 만하루 <아래쪽 사진>
공산성의 얼음창고도 만날 수 있었다.
얼음창고 위는 넓은 평지였다.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문으로 선조 36년(1603) 옛 망북루터에 신축한 것으로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강 사이를 왕래하는 남북통로의 관문이었다고 한다.
공북루에는 2021세계유산축전 행사 중 하나인 <백제로 별빛마실>로 인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원래 이곳은 공북루와 진남루를 가로질러 서울로 오가는 관리들의 주된 동행로였는데 구한말 공산성과 군영이 기능을 상실한 뒤 공산성 군영터에 성안마을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안마을의 토지는 일제강점기 초기 공주의 갑부인 김갑순이라는 사람에게 팔렸고 그는 성안마을의 군영자리에 쌀 창고를 지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시장이 열리자 쌀 창고에서 시내로 쌀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길이 서문고개였다고 한다.
공북루 에서 바라 본 금강~
오랜 역사의 현장 답게 오래된 고목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공산정 쪽에서 바라 본 금강철교
탁 트인 공간~ 공산정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공산정에서 바라본 공북루
공산정에서 바라본 금강 건너 공주신시가지~
공산정에서 바라본 금서루과 성곽
오후 6시 33분~ 석양을 바라 보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30여분을 쉬었다가 그이가 스크린 끝나고 출발한다는 문자를 받고 내려왔다.
친구들과 함께 온 여학생들에게 부탁하여 찰칵~ 나도 그 여학생들을 찰칵~
공산성 성곽길 천천히 걸어볼만 하였다.
금서루에서 오른쪽으로 출발 공산정으로 돌아오는 방향을 추천하고 싶다.
공산정쪽으로 돌면 연지가 있는 만하루에서 올라가는 길이 가팔라 조금 힘들듯 싶었다.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공주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보며 약 3시간 동안 머물렀던 공산성~
다음엔 그이랑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