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적상산
점점 깊어가는 가을
동부평생교육문화센터 사진반에서 무주에 있는 적상산으로 출사를 다녀왔다.
안국사 위쪽 산으로는 단풍이 졌지만
아래부분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가득 담고 왔다.
한국 100경 중 하나인 적상산(赤-붉을 적, 裳-치마 상)은 해발 1,034m로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에 단풍이 붉게 물들면
적상산의 기암괴석과 단풍의 색상이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여인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적상산이라 불린다.
안국사에서 바라다본 풍경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3년 (1277년)에 월인 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광해군 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이 절을 늘려 지었고
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고 한다.
그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었고,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 하여
절 이름을 안국사(安國寺)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1910년에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하늘을 바다삼아......
적상산성은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만든 성으로 총길이는 8,143m이며
본래 동서남북으로 4개의 문이 있었고 각 문에는 2층으로된 문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고 한다.
적상산은 사면이 깍은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일찍부터 군사 요충지로 주목받았으며
고려시대 거란병이 침입했을 때에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하였으며,
고려 말에는 최영 장군이 천혜의 요소를 갖춘 이 산에 성을 쌓을 것을 건의한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적상산성이 축성된 시기는 정확히 확인 할수 없는데,
축성의 형식으로 보아 삼국시대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산성 내에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을 보관한 사고가 있었으며,
사고 수호를 위한 호국사(護國寺-조선시대 승병을 양성)등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적상산성에서 바라다본 풍경
안렴대에서 바라다본 풍경
안렴대는 적상산 남쪽 층암절벽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이 낭떠러지로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때 삼도(三道) 안렴사(按廉使)가 군사들들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불려지고 있으며,
또한 병자호란(1636~1637)때는 적상산사고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적상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적상호는 양수발전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이다.
저멀리 보이는 건물이 사고를 보관하던 곳이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풍경.
굽이 굽이 길이 보이며, 아래 보이는 주차장은 머루와인동굴이 있는 곳이다.
빨간 단풍나무가 절정을 이루었다--이렇게 곱게 물든 단풍은 처음 보는것 같다.
적상산 초입의 은행나무 길.
*^^* 언제 다시한번 들리고 싶은 적상산 가을 여행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