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인문학 -김임벽당 생가지
김임벽당 생가지는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김임벽당(1492~1549)이 시집와 살았던 곳으로
조선전기 3대 여성문인(신사임당, 허난설헌,김임벽당)으로
그녀의 시는 생존 당시에도 이미 세간에 회자될 정도 였다고 한다.
공사중이어서 생가지 입구까지 차가 들어갈수 없어
약 20여분간 걸어 들어갔는데
늦가을 날씨가 너무좋아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비인은 배꽃 복숭아꽃이 흔해서 동네이름도 예전에는 도화동이었다고 한다.
드디어 도착한 김임벽당의 시비와 부부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500여년 된 두그루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물 고인 곳에 연못을 파, 못 가운데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선취정'과 '임벽당'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500여년된 은행나무
김임벽당은 많은 수의 한시 작품을 지었을 것이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7수 밖에 없다고 한다.
김임벽당의 7세손 유세기는 각기 흩어져 전해지고 있던 7수의 시를 수습하여
각명사에게 서와 발문을 청하여 [임벽당칠수고]를 발간하였다.
서문은 유세기와 남구만(1693년 6월)이,
발문은 조지겸.윤증(1686년 정월), 조인수.한태동(1686년 3월) 남용익(1691년 봄)등이 썼다.
7수의 시 가운데 <제임벽당>2수는 임벽당이 베개에 자필로 수놓은 시인데
남구만이 서를 쓸당시까지만 해도 약 200여 년 간 후손이 보관해 내려왔다고 한다.
<증질자>.<증별종손>2수는 [국조시산]에,
<별증> <빈녀음>
<고객사> 3수는 [열조시집](명나라 전겸익이 엮은 책)에 수록되어 있는 시이다.
<김임벽당이 직접 베개에 수를 놓아 전해진 시를 새겨놓은 시비>
*^^* 지금은 아쉽게도 수놓인 베개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작은골의 조용하고 깊숙한 이 한구역은
벼슬을 버리고 산수를 즐기며 근심을 잊을만하다
인간의 시비와는 전혀 무관하니
꽃이 피면 봄을 알고 잎이 지면 가을인 줄 아네
수풀에 의지한 집에 티끌하나 없으니
다만 은자가 천성을 기르기에 알맞구나
한가히 베개베고 쉼에 봄잠이 만족하니
하는 일 없음이 마치 태초의 백성 같도다
*^^* 지금도 큰길에서 20여분 걸어 들어 왔는데
예전에는 정말 조용하고 깊숙한 작은 골짜기 도화동임을 느낄수 있었다.
520여년된 은행나무
이곳 어딘가에 김임벽당의 눈길이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차를 타고 왔더라면 만나지 못했을(공사중이어서 다행?)
돌아 나오는길에 만난 지게와 어르신이 어우러진 가을풍경
해맑게 웃으시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삶의 무게를 전혀 느낄수 없었다.
원촌교 다리위의 일몰
어느새 늦가을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