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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송이 2015. 4. 3. 23:33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