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7일(일) 오랜만에 대전스토리투어에 다녀왔다.
지난 15일 공지를 보고 토끼친구들에게 알렸고 모두들 시간이 된다고 하여 함께 신청하게 되었다.
올해부터는 참가비가 1만원이었고 시문학투어는 처음 기획된 것이었다.
오전 9시 10분 시청역 1번 출구 출발 --> 만인산 정훈 시비 --> 만인산 자연휴양림 산책 및 시짓기 --> 목척교 유래비 --> 오룡역 작은 문학관 --> 오류동 박용래시인 옛집터 --> 점심 --> 오후 2시경 시청역 1번 출구 해산
아름다운 봄날, 약 5시간 동안 알찬 봄나들이였다.
정훈(1911~1992) 시인의 시비는 대전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이곳(머들령) 만인산자연휴양림에 있었다.
머들령 / 정훈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내리고
등짐 장사 쉬어 넘고
도적이 목 지키던 곳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뻐꾸기 자꾸 울던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르트고
파랑 갑사댕기
손에 감고 울었더니
흘러간 서른 해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머들령>은 1940년 발표된 시로 시인은 이 작품에 대하여 "20세가 넘어서 두 번째 머들령을 넘으며 7~8세 때에 할아버지와 넘을 적에 그 추억을 되새겨 본 시다. 어릴 때는 개명화에 발이 부르터 울었고 청년이 되어서는 긴 세월이 흘러도 조국 하늘에는 아직 슬픔이 어리어 있다는 것이다. 나라 빼앗긴 설움이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머들령>은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애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낸 시라 할 수 있단다.
<이사동 24인의 이야기> <이사동 콘텐츠를 꿈꾸다> <이사동에서의 하루> 등을 출간한 한소민작가와 동행하며, 더욱 풍성한 투어가 되었다.
오늘도 친구들과 동행하며 봄날의 추억을 쌓았다.
몇해전 그이랑 왔을때 차를 주차할 곳이 없어 그냥 돌아갔었는데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고 다음에 다시 와봐야겠다.
꽃진자리에는 어느새 연초록 버찌가 매달려 있었다.
문영씨가 준비해온 바나나도 맛나게... 녹차라떼도 맛나게...
붉은벌깨덩굴이 피어있던 길을 지나 대전에서 가장 긴 의자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나무를 반으로 자른 10m 길이의 긴 나무의자가 있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름다운 봄풍경을 바라보며 내 마음을 글로 담기도 하였다.
보고싶다는 문구를 보았을때 떠오른 한 사람... 윤민이......
......
보고 싶다
아름다운 봄날 이곳에서...
......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한소민작가님이 참가자들이 쓴 글을 하나하나 읽어주었는데 짧은 시간에 모두들 멋지게 표현을 해주었다.
내가 10대부터 좋아하였던 서시도 만났다.
목척교유래비는 원래는 대우당 약국 있는 쪽에 있다가 이곳으로 이전을 하였단다.
이 곳은 본래 우리 고장의 옛 지명으로 전해 오는 한밭의 뿌리가 되는 목척마을의 중심부이다. 1945년 8.15 광복을 전후할 무렵까지 현 홍명상가 맞은편 대전천 둑길 아래에는 오랜 연륜을 가진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었다. 한밭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 온 이 은행나무로 말미암아 이 일대의 마을을 으능정이, 은행동이라 하였으며 이 곳의 북쪽인 현 중앙데파트 일원을 목척, 목척리 혹은 목척마을이라 불렀고 또 당시 대전천을 건너 다니던 유일한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를 가리켜 목척다리라 하였다........중략......목척교 일원의 대전천 복개 사업은 1972년 5월 건설부와 1973년 5월 충청남도로부터 실시계획 인가가 나와 1974년 완공을 보았다. 이제 목척교가 자취마저 사라진 지 14년 그 다리를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뉴대전 로타리클럽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여기 옛 터전에 유래비를 세우다.
1989년 10월 8일
1974년 대전천을 복개하고 그위에 지은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대전시의 3대하천 생태복원사업 추진에 따라 2008년과 2009년 철거가 되었고 현재의 목척교는 2010년 새롭게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목척교에 대한 두 편의 시를 태임씨와 내가 낭독을 하였다.
목척교 / 이재복
가버린 것과
올 것의 그
중간을
헤아릴 수 없는
엇갈림 속에
끼여
나는 지금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치열한
도심은
목이 타는데
끝이랄가
시작이랄가
이 멍청한 나의 시간을
목척교 / 홍희표
목척교에 서 있으면
까치 같은 사람을 만나리라
박용래 눈물 흘리며
울부짖고
김석천 술병 치켜들며
달려오고
목척교에 서 있으면
감꽃 같은 사람을 만나리라
한성기 흰 고무신 흔들며
울부짖고
송유하 윗입술 뜯으며
달려오고
같은 장소지만 시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두들 다른 느낌으로 추억되리라.
오룡역 작은문학관은 2024년 12월 오픈하였으며, 오룡역 엘리베이터 타는곳 양쪽 벽면에 조성되어 있었다.
오룡역 작은 문학관을 만든 대전문학관 최팀장님이 이곳에 문학관을 만든 배경을 직접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용래시인의 약력및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녁 눈 / 박용래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에만 다니다 붐비다
박용래 시인이 1963년부터 1980년 작고할 때까지 창작활동을 해 오던 오류동 청시사 옛 집터가 오룡역과 서대전네거리역 사이에 있었다.
오룡역 작은문학관을 나와 시인의 옛 집터로 향하였다.
<대로변에 있던 안내판>
차 안에서 함께 읽었던 <이문구의 박용래 평전>을 옮겨본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러기에 그는 한 떨기의 풀꽃, 한 그루의 다복솔, 고목의 까치둥지, 시래기 삶은 냄새, 오지 굴뚝의 청솔 타는 연기, 보리누름철의 밭종다리 울음, 뺄기 배동 오르는 논두렁의 미루나무, 호드기 소리, 뒷간 지붕 위의 호박 넝쿨, 심지어는 찔레 덤불에 낀 진딧물까지,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때가 없었다.
큰도로 건물 뒷쪽에 시인의 옛 집터가 있었다.
집의 이름인 청시사(靑枾舍)란 감나무에 감이 매달리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진 집이라고 한다.
그동안 사는 이 없이 비워둔 집을 2009년 대전광역시 중구청에서 사들여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주차장 보다는 감나무가 있고 안주인과 시인이 가꾸었다는 꽃밭과 텃밭이 있는 박용래문학관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 일정은 박용래 시인이 특별한 날 즐겼다는 음식인 중화요리집에 들러 우리들도 스토리투어가 있는 특별한 날,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출발지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다 함께 읽었던 시.
여인숙 / 루미
인간이란 손님이 머무는 집,
날마다 손님은 바뀐다네.
기쁨이 다녀가면 우울과 비참함이,
때로는 짧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네.
모두 예기치 않은 손님들이니
그들이 편히 쉬다 가도록 환영하라!
때로 슬픔에 잠긴 자들이 몰려와
네 집의 물건들을 모두 끌어내 부순다고 해도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하라.
새로운 기쁨을 위해 빈자리를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운 마음, 사악한 뜻이 찾아오면
문간까지 웃으며 달려가 집안으로 맞아들여라.
거기 누가 서 있든 감사하라.
그 모두는 저 너머의 땅으로 우리를 안내할 손님들이니.
* 잘랄루딘 루미(1207~1273)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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