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儉而不陋 華而不侈

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

비단물결 금강천리 - 영동 누각길(송호리)

송이 2014. 10. 7. 00:22

 10월 2일 올해 들어 3번째 금강트레킹에 참여하였다.

비소식이 있어 걱정했는데 날씨는 좋았고

정오무렵 비가 조금 내렸지만 금방 그쳐 다행이었다.

 

  감과, 포도 그리고 요즘에는 산골오징어도 유명하다는 영동.

 

 

오전 9시 한밭수목원을 출발하여 도착한 곳은

영동군 양산면 수두리 양강변에 위치한 봉황대에서 부터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숲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수두리앞을 흐르는 금강은 양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세월교를 건너 강변을 따라 내려가면 송호리 솔밭이 나온다.

 

<세월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풍경>

금산에서 영동쪽으로 내려오는 상류의 물살이 힘차다.

<송호유원지 쪽으로 흐르는 하류>

<세월교를 건너 양강변으로 내려가고 있는 일행들>

나는 앞에서 6번째~

환경 유해 식물인  가시박이 열매를 맺고 있었는데

씨앗도 호박씨와 비슷하였다.  

지금은 가시가 돋아 있어 손으로 제거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씨앗 하나가 싹이 나면 한 덩굴에서 씨앗 3000개가 열린다고 하는

가시박때문에 금강변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강가에서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약 5.5Km를 걸어 도착한 송호리 솔밭

강가의 중국단풍나무가 빨갛게 물들면 아름답다는데

올가을 그이랑 한번 들려보아야겠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금강

송호리 송림은 수령이 300~400년생의 소나무 천여그루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1960년대 '소나기'라는 영화의 촬영지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예기치 않은 시낭송 요청으로

마종기님의 '우화의 강'을 낭송하고 있는 나.

나의 작은 재능인 시낭송으로

사람들을 잠시나마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 감사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편소재」에서 발췌한 한시 「양산가」

신라 태종 무열왕때인 655년에 화랑 김흠운이 백제땅 양산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여 지어 부른 노래라고 하며,

뒷면에는 원문 번역문과  이지방에서 전해오는 구전민요 양산가가 함게 새겨져 있다.

 

 

영동의 양산팔경은 영국사, 강선대, 비봉산,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서당, 용암 인데

 여의정은 솔밭 바위 위에 새워 놓은 정자로 만취당이라고 불리었던 이곳은

400여년 전 황해도 연안부사였던 박응종이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예절과 풍속, 정치와 역사를 설교하며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가 가져온 솔방울이 지금의 송호리 송림을 이루는 씨앗이었다고 한다.

현 건물은 1935년에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아래 축대 부분이 예쁘게 마무리되어 있어 내 시선이 머물렀었다.

 

<강선대로 향하는 봉곡교 다리 위에서 바라다본 송호리 솔밭과 용암>

<봉곡교에서 바라다본 강선대>

전설에 의하면 아득한 그 옛날 하늘에서 선녀 모녀가 지상을 내려 보다가

강물에 비친 낙락장송과 석대가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하강을 하여

목욕을 하였던 곳이기에 강선대(降仙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소나무가 정말 아름답다.

<강선대에서 바라다본 풍경>

<함께 동행했던 미숙씨와>

 

 트레킹으로 마음을 상처를 치유해 가고 있는 나...

<강선대에서 용암을 배경으로>

 

강선대를 뒤로하고 영동 학산 시항골로 향하며

오전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