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儉而不陋 華而不侈

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

소수서원 - 2015. 5. 20

송이 2015. 5. 25. 00:16

5월 20일(수) 대덕문화원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역사문화탐방을 다녀왔다.

그동안 시간이 안맞아 한번도 참석을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짬을 내어 참여를 하였다.

 

영주까지 거리가 멀어 왕복 6시간 이상을 이동하는데 보냈지만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첫번째 관람한 곳은 영주 소수서원으로

입구의 소나무 군락이 인상적이었다.

 

겉과 속이 모두 붉다하여 적송이라 부르는 3백년에서 길게는 천년에 가까운

적송나무 수백그루가 서원 주변을 뒤덮고 있는데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고

이 소나무들을 학자수(學者樹)라고 부른다고 한다.

 

 

旣廢之學(기폐지학) 이미 무너진 학문을

之(소이수지) 다시 이어 닦게 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보물 제 59호인 숙수사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절의 위치를 알리는 상징적인 조형물로

절에서는 불교의식이나 행사가 있을때 당이라는 깃발을 높이 달았는데

당간지주는 당을 매달던 깃대, 즉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돌기둥이라고 한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당간지주 역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소수서원이 절터에 세워진 서원임을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수령이 500여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로

백운동서원이 1543년 설립되었으니 아마 그때 부터 있던 은행나무가 아닐까 싶다.

 

 

주세붕(1495~1554)은 이곳에 1543년 백운동 서원을 세웠고

이황은 백운동 서원이 1550년 소수서원으로 사액을 받게 하였다.

 

 

 

 

 

'敬'자는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하고 쓴 글씨라고 하며

'경'은 성리학에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양론의 핵심으로 선비들의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소백산에서 발원했다는 죽계천 건너편의 취한대로

퇴계 이황은 풍기군수로 있을 당시 이곳에 송백과 죽을 심어翠寒臺라고 이름짓고

 이곳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인

'경렴정'은 북송의 성리학자인 염계 주돈이를 경모하는 뜻으로

그의 호에서 빌어왔다고 한다.

 

 

 

    이곳 출신의 성리학자인 안향(1243~1306)을 배향한  문성공묘 사당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지락재

 

 

 

학구재

 

 

 

 

 오른쪽이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불리는 안향의 영정

 

 

 

 

일영대(해시계)

 

 

서원 밖에 있는 

1593년 겸암 류운룡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탁청지를 뒤로 하고

 선비촌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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