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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

백두산 여행 7 - 일송정

송이 2025. 9. 2. 17:06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비암산에 있는 일송정이었다.

 

용정은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도시로 연변 내 모든 행정구역 중 조선족 비율이 가장 높으며 19세기 후반부터 조선 사람들이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선구자  (윤해영 시 / 조두남 곡)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 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 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 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비암산 풍경구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0여분 이동하였다.

 

 

 

 

 

 

앞쪽은 한문으로, 뒷쪽은 한글로.

 

 

 

 

일송정에 오르니 용정 시내와 해란강이 한 눈에 펼쳐졌다.

 

 

왼편으로 관람차 등 비암산 놀이공원이 보였다.

 

 

오른편으로는 해란강이 흘렀다.

 

 

해란강은 용정 시내를 흘러 두만강과 합류한다고 한다.

 

 

 

 

일송정은 산 정상에 있던 아름드리 소나무 모양이 정자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졌단다.

 

용정의 조선인들이 용정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여기며 신성시 했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버팀목이자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나라의 독립을 꿈꾸었던 일송정.

 

이에 일제는 1938년 소나무를 강제 고사 시켜버렸고,  그후 잊혀졌다가 1991년 용정시에서 소나무를 심고 정자를 새로 지었단다.  그런데 소나무가 계속 죽어 다시 심기를 8번, 드디어 2003년 9번째로 심은 소나무가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단다.

 

 

 

 

 

오른쪽 이정표 -->  유리널판결단 허궁다리, 하늘의 거울, 벼랑그네, 유리 허궁다리

 

예전에는 한글만으로도 표기가 가능했으나 지금은 중국정부의 정책에 따라 한문과 한글을 같이 쓰고 있단다.

 

 

다시 셔틀 버스를 타러......

 

 

내려오는 길에  바라다 본 일송정~

 

 

연길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바라 본 논과 끝없이 이어진 옥수수밭.

 

 

늦은 점심은 꿔바로우와 물냉면으로.....

이곳의 문화는 냉면그릇에 수저대신 국자가 올라오기도 하였다.  

 

 

버느나무가 즐비했던 강변은 깔끔하였고 저녁 야경은 화려하였다.

 

 

연길 중학교.

 

 

백두산 일정이 취소되며 어제, 오늘 이틀이나 마사지샵에 들렸던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