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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14 - 천안문.자금성

송이 2018. 5. 5. 22:44

중국 여행 마지막날이었던 4월 26일(목)

천안문과 자금성을 둘러보았다.


 천안문은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넓이와 함께 최대 수용 인원을 자랑한다고 한다.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이곳은 중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모택동(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와 펄럭이는 오성홍기로

북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손꼽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유명한 자금성은

명.청 시대의 황실 궁전으로 198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황제의 허락없이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의 자금성은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황실만의 공간이었으며

현재 황실의 찬란한 전통과 유적을 간직한 박물관으로 바뀌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고궁박물원'이라고 한다.



7시 숙소를 출발하여 8시 30분경 천안문광장 입구에 도착하였는데

이른 시간인데도  관광객들이 매우 많았다.


중국 관광객들은 이른 새벽부터 움직인다고 하였다.



광장 중앙은 인민 영웅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인 인민 영웅 기념비가 있으며

주위에는 인민대회당, 모주석 기념당, 중국 국가 박물관 등이 있었다.



<인민대회당과 천안문>


천안문 앞에 걸인 모택동의 사진은 일년에 1번 교체되는데

모택동의 시선이 어느곳에서 보든 본인을 쳐다보고 있는것 같다고 한다.



<천안문 앞에서>



천안문을 들어서면 바로 자금성과 이어지며

우리는 동문으로 들어가서 북문쪽으로 나왔는데

워낙 넓고 관광객들도 많아 자칫 일행들을 놓칠세라

걸음이 빨라졌다.



<천안문과 오문 사이에 있는 중간문인 단문(端門)>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자금성은

현존하는 궁궐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전체 면적이 72만㎡이며 약 20만명의 노동력이 동원되어

15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1420년에 완성되었으며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까지 명.청대의 황제 24명이 이곳을 거쳐갔다고 한다.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이 저 멀리 보인다.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午門)

 


자금성은 황제가 의식이나 축전 등 대외적인 정무를 책임지고 관리하던 장소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있는 외조와

황제의 개인적인 공간을 엿볼 수 있는 건청궁, 교태전, 양심전, 동륙궁,

창음각, 어화원, 신무문, 종표관이 있는 내정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건축 당시 무려 700여 개의 건축물과 9,999개의 방이 있었으며

105만 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태화문을 지나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을 향하여~





기단위의 물이  용머리 입을 통해 아래로 빠지게 하였는데

자금성의 이런 배수 시스템은 매우 방대해 지금까지 보존된

 빗물 배수로의 길이가 15km가 넘으며 

그중 매설된 배수로가 13km에 달한다고 하는데

자금성내의 많은 빗물 배수로는 돌로 만들어져 매우 견고하다고 하며

모든 배수로는 성밖의 해자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 2016년 7월, 베이징에 폭우가 쏟아져 온통 물바다가 되었지만

자금성의 3대 궁전인 태화, 중화, 보화궁을 받치는 기단위의 

1142개의 용머리에서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며 배수구 역할을 해

순식간에 단상의 물을 뽑아내었고 이 물은 지하 배수로를 통해

주변 하천으로 유입되어 비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태화전 앞에서 바라본 태화문 - 천안문 광장 쪽



 목조건물로 되어 있는 자금성의 화재 대비를 위해

 물을 담아 놓았던 동항아리도 볼 수 있었다.



건물 벽면의 작은 공기 구멍(?)의 꽃 조각 작품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단의 조각



<중화전>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품~

이곳은 황제가 (가마 타고) 지나다닌 길이라고 한다.








궁을 지키는 사자상~ 

오른발로 보주(보배로운 구슬)를 쥐고 있는 사자가 숫사자이며

왼쪽에 새끼사자를 왼발로 누르고 있는 사자는 암사자라고 한다.





< 건천궁 >


드 넓은 성안에 나무가 없다.

 이유는 자객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





<건천궁 지붕위의 잡상>



청나라의 시조인 누루하치가 어린시절 누군가에게 쫓겨서 목숨이 위태로울때

  누루하치가 어느 구덩이에 숨자 어디선가 까마귀떼가 날아와서 그를 가려주었고 

그 덕에 목숨을 구한 누루하치는  나중에 청나라를 세운 후

까마귀를 함부로 잡지 말것을 지시했으며

   황제가 까마귀를 위해 모이를 놔 주던 곳이라고 한다.




<교태전>



<교태전의 창살>




<곤녕궁>



<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 본 곤녕궁 건물 내부 > 





벽돌에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적혀 있다는 도장~  벽돌 실명제(?)





자금성의 후원





황제와 후비들이 휴식을 취하고 경치를 감상하던 어화원



괴석 덩어리인 퇴리산과  그 위의 정자는 어경정~

이화원에도 커다란 괴석이 있었는데...



껍질이 흰 소나무인 백송~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서며~


해자를 만들며 퍼낸 흙으로 쌓았다는 인공산인 경산~

저 곳에 오르면 자금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여기까지~



<경산공원에서 바라 본 자금성 - 인터넷에서 퍼옴>

사진을 정리하며 경산공원에서 바라다 본 자금성이 궁굼해서 찾아보았다.



< 천안문과 자금성 지도 >

 

약 2시간에 걸쳐서 천안문과 자금성을 둘러보며

드 넓은 광장에 놀라고, 자금성의 크기에 놀라고,

수많은 사람들에 놀랐다.


가이드가 중국사람 앞에서는 3가지 척을 하지 말란다.

있는척, 아는척, 잘난척~

 

중국인들은 옷차림에 신경 안쓰고 먹는것에 신경 쓴다고 함~




 너비가 52m, 깊이가 6m에 이른다는 자금성의 해자 연못




반영이 아름답다.



중국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십찰해 인력거 투어였다.

십찰해는 본래 몽고어로 열 개의 사찰이라는 뜻이나

지금은 사찰 대신 음식점과 유럽풍의 카페, 호프집이 즐비하여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아저씨가 힘들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힘들다고 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 이동중 차안에서 >



북경 코리아 타운에서 점심을~

목포산 꽃게찜은 아니고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이 안남~ㅠㅠㅠ

 


북경 3청사 공항에서~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북경의 야경~



우리나라의 야경


 

26일, 오후 8시 30분 북경을 출발해 김포공항에 10시경 도착하였고

집에 도착하니 2시가 다 되었었다.


 북경과 장가계, 두 도시를 모두 보려 하니

일정이 빡빡하였지만

그래서 알찬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사진을 정리하며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중국여행을 다시 한번 다녀온 느낌이다.


다음은 어디로 떠날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