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보원사지에서 예산 추사고택으로 이동을 하였다.
예산 추사고택은 7년만에 다시 찾았다. 2018년 12월에 들린 추사고택에서 감나무가 인상적이어서 기대했는데 올해는 감이 많이 달려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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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추사고택
12월 1일(토)과 2일(일)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에서 강산친목회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 다녀왔다. 첫날 온천욕도 하고 2일에는 추사고택과 솔뫼성지를 둘러보았으며 점심으로는 예산의 맛집에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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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 유배지에서 59세때 (1844년) 제자 이상적(1804~1865)에게 스승을 잊지 않고 귀한 책을 보내준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에 비유하여 그려준 세한도가 새겨진 표지석이 보였다.

원래 세로 33.5cm 가로 70cm 정도였던 세한도는 청나라 문인 16인과 우리나라 문인 4인의 감상글 22편이 이어져 1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가 되었으며 손창근선생이 50년을 보관하다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단다.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이곳은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대왕의 사위가 되면서 예산과 서울에 저택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예산의 집은 53칸 규모였는데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 비용을 분담하여 지었다고 한다. 1976년 그중 일부만 복원해 현재 고택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예산은 조상의 터전이 있는 곳이라 김정희는 성묘와 독서를 위해 자주 왕래하며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사랑채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풍경이 멋스럽다.

여성들의 공간이었던 안채
주련에 쓰인 글귀를 하나씩 읽는 재미도 있다.



고요히 앉은 곳에 차가 반쯤 우러나 향이 오르고.
최고의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
최고의 요리는 두부, 오이, 생강, 나물,

안채 툇마루에 앉아 바라다 본 하늘.

안채 뒷쪽 사당으로 가는 담장 아래 화단에는 봄이면 수선화가 피어난다고 한다.



추사의 영정을 모신 추사영실..... 돌담이 멋스러웠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 영당이다.
현재 초상화의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현판의 원본은 간송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감나무에 감이 없어 조금은 아쉬웠지만 천천히 걷기 좋은길이다.


화순옹주(1720~1758) 홍문은 영조의 둘째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13세에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과 결혼하였는데 김한신이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옹주가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죽었으니 불효라 하며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으며 화순옹주는 조선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홍문안에는 묘막터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백송공원도 있었는데 올라가 보지는 않았다.



추사기념관 앞 조형물 앞에 있던 홍매화가 봄인줄 알고 꽃을 피웠다.

추사기념관도 천천히 둘러 보았다.


선생은 1816년 서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의 실체를 확인하고 금석과안록.진흥이비고 등을 집필한 금석학의 대가였다.


추사가 서거 3일전에 남긴 봉은사 판전 현판.

커다란 수선화 종이꽃이 있어 왜그런가 했더니 조선에 수선화가 크게 알려진 두 번의 계기가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모두 추사가 있었다고 한다.
1. 추사가 어렵게 구한 수선화를 다산 정약용에게 선물하였는데 이 사실은 1828년 다산의 여유당전서 제1집 제6권에 남아있단다.
2. 추사는 유배기에 조선자생 수선화를 발현하는데 바로 제주 수선화이다.
그래서 고택 영당가는 담장 아래 화단에 수선화를 심었나 보다.

" 기지개를 키며 일어난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 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 "


" 비록 9999분에 이르렀다 하여도 그 나머지 1분을 원만하게 성취하기가 가장 어렵다. 9999분은 거의 다 가능하겠지만, 이 1분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또 사람의 힘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
" 가슴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 "

추사선생의 다양한 낙관들......


기념관을 나오니 오후 3시가 다 되었고 가고자 했던 식당이 브레이크타임이어서 먼저 예당저수지를 들리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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