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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

밀양 표충사 - 2016. 6. 24

송이 2016. 6. 25. 17:47

점심을 먹은 후, 들른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이 있는 절로

불교와 유교의 이념이 통합된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라 한 것을

신라 흥덕왕 때부터 영정사로 하였고

1839년 표충사당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절이름이 표충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명.청허.기허대사의 위패가 모셔진 표충사

 

 

1839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는 표충서원은 불교사찰내의 유교식 서원으로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을 올린다고 한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으로

보물 제467호로 지정되어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95년, 해체 보수 때에 나온

많은 유물은 탑과 표충사의 역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표충사의 중심 불전인 대광전이 있는 공간

 

 

 

신라 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지만,

전란 등으로 불타 버린 것을 1929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대광전 안에는 2015년 7월 진주 월아산 두방사에서 가져온

석가모니불 진신사리 6점이

중앙에 모셔져 있어 볼 수가 있었다.

 

 최근 진주 월아산 법륜사지 다층석탑에서 사리 23과가 연기문과 함께 발견되면서

표충사의 진신사리로 밝혀졌다고 한다.

 

연기문에 의하면 지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영정사 삼층석탑(현재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에 모셔진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말사였던 진주 월아산 동쪽 법륜사에 옮겨 모셨으나

진주까지 왜군이 밀려들자 월아산 남쪽 두방사로 다시 숨겨 모셨다고 한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은 지난 1995년 해체보수할때 많은 유물 중

백자로된 사리함이 나왔지만 부처님 진신사리는 발견되지 않아

탑의 기단부에 재봉안하였는데

진신사리는 추후에 다시 삼층석탑안에 봉안할 계획이라고 한다.

 

 

 

 

보광전 맞은편 꽃비가 내리는 곳, 우화루(雨花樓)에서~

 

古靈井(고영정)이라는 현판이

이곳 표충사가 원래는 영정사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여러절에 모셔져 있는 사명대사의 진영 24개가 우화루 양쪽에 걸려 있었는데

조금씩 모습은 달랐다.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에서

 남계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느긋하게 앉아 차 한잔도 못하고 돌아와 조금은 아쉽다.

 

 

 

대광전을 뒤로 하고...

 

 

표충사 앞의 우거진 숲길~

비가 내려 버스를 타고 들어와 울창한 숲길을 걷지 못하였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들릴 수 있기를......

 

 

 

<국보 75호 표충사 청동함은향완 - 1177년(고려 명종 7년) 제작>

 

 

 

표충사 청동함 은향완

 

                                    이우걸(1945~ )

 

공양구여 공양구여

향기로운 공양구여

어지러운 고려의 뜰 한편에 숨어서

간절히 바치고 싶던 마음의 그릇이여

 

청동

은입사

균형 잡힌 품격 안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의

기원이 담기고 스며

오늘도 시정市井을 향해

잠 못 들고 계시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