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儉而不陋 華而不侈

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

내장산 단풍

송이 2025. 11. 19. 18:49

2025년 11월 12일(수)

중리종합사회복지관에서 후원자와 봉사자들을 위한 가을 나들이로 내장산 단풍구경을 다녀왔다.

지난 2017년부터 <사랑의 지니>에 매월 조금씩 후원하고 있는데 마침 일정이 없어 다녀올 수 있었다.  내장산 단풍이 유명한데 가을 단풍 구경은 처음이지 싶다.

 

단풍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내장사 입구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갔다가 나올때는 계곡따라 단풍구경을 하면서 걸어나왔다.  추령장승촌도 잠시 구경하였던 즐거운 가을 나들이였다.

 

 

단풍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내장사 입구 연못에는 동전을 넣어 소원을 비는 곳도 있었다.

그날 옆자리에 앉았던 분과 내장사 까지 동행을 하였는데 80세가 넘으셨다고 하였다.

 

 

내장사는 636년 창건 이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2012년 전기누전 화재, 2021년 3월에는 방화로 대웅전이 소실되어 2024년 9월 다시 공사를 시작하였고  현재 거의 완성 되어 가고 있었다.

 

 

<천하명승 내장산> 현판이 걸린 정혜루

 

 

담장 밖 은행나무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웠다.

 

 

내장사를 나와 원적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 보았다.

 

 

 

원적계곡은 '먹방이골'이라고도 불리며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에서 시작하는 물줄기가 합쳐져 흐르는 3.2km의 계곡으로 원적암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지형이 완만하고 암벽이 없어 옛날에는 정읍으로 넘어가는 통로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춘추관, 성주, 충주 사고에 보관중이던 실록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전주사고에 보관하였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어진은 정읍에 살던 선비 안의, 손홍록이 내장산으로 이안하고 내장사 주지 희묵대사를 비롯한 승려들과 무사들이 함께 일년여 동안 온전하게 지켜냄으로써 역사기록의 단절을 막을 수 있었단다.

 

기록에 의하면 1592년 6월 22일 실록을 내장산 은봉암으로 옮기고 7월 1일 태조어진을 용굴암으로 옮겼으며......

 

문화재청은 실록을 안전하게 지켜냈던 역사를  기억하고자 매년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날'로 제정하였단다.

 

 

차량이 있는 곳까지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단풍나무 숲에서......^^

 

 

단풍과 어우러진 우화정이 있는 연못 풍경도 아름다웠다.

 

 

우화정은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의 우화정은 1965년에 지어진 기존의 우화정이 낡아 2016년 전통 한옥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이란다.

 

 

청기와가 단풍과 잘 어우러졌다.

 

 

길쭉한 열매가 감나무는 아닌것 같았다. 

 

 

갈대와 어우러진 단풍.

 

 

응달에는 아직 푸르렀다.

 

 

내장산 능선의 도로를 넘어가면 추령장승촌이 있었다.

 

 

 

 

추령장승촌으로 향하며......^^

 

 

추령은 전라북도 정읍시와 순창군의 경계에 위치하는 해발 320m의 고갯마루다.

 

 

 

골짜기 아래 내장사가 자리하고 있다.

 

 

추령 장승촌은 1990년대 초 장승을 조각하는 목공예가 윤흥관이 추령에 정착하면서 추령 장승촌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단다.   

 

 

목각 장승을 만드는 목적이 상업용.관광용이기 때문에 장승이 종교적 성격을 갖지는 않으며 추령의 장승들은 목공예적인 예술성이 강하지 신앙성을 전제로 조각하지는 않아 마을 공동체 신앙의 대상으로 만드는 목장승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정말 다양한 목공예품들이 즐비하였다.

 

 

 

볼거리도 많았던 추령장승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