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진각은 퇴계선생의 유물 전시관으로 1970년에 완공되었단다.
퇴계선생이 생전에 쓰던 베개와 자리를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501년 안동에서 7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생후 일곱달 만에 부친이 돌아가셨단다.
퇴계 선생은 23세인 1523년 성균관에서 공부하였고 24세부터 과거시험에 응시하였으나 세번 낙방하였으며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단양군수, 풍기군수,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단다.
<심경부주>는 심경(心經)에 주석을 붙인 성리학 해설서로 심경을 가장 중요시한 퇴계 선생은 새벽마다 심경부주를 한 차례씩 소리 내어 읽었다 한다.
1570년 12월 8일, 매화분에 물을 주게 하고 침상을 정돈한 후 단정히 앉은 자세로 눈을 감았다고 한다.
퇴계선생의 묘비명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
퇴도-이황 선생의 호, 만은-만년에 은거함, 진성이공-진성이씨
묘갈명도 직접 지었단다.
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장성해서는 병이 많았네.
중년에 어찌 학문을 좋아했고
말년에 어찌 벼슬에 올랐던가.
학문은 구할수록 멀어지고
벼슬은 사양할수록 몸에 얽히네.
세상에 나가서는 넘어졌으나
물러나 은둔하니 올발랐네
나라 은혜에 깊이 부끄럽고
성인 말씀이 참으로 두텁구나.
나는 옛 사람 생각하니
실로 내 마음과 맞는구나.
후세 사람들이라고 어찌
지금의 내 마음을 모르리오.
성학십도 - 유교철학의 주요체계 10가지를 도식으로 나타낸 것으로 퇴계선생의 나이 68세때인 1568년에 작성하여 선조대왕께 올렸고 선조께서는 성학십도를 병풍으로 만들어 좌우에 두고 보았단다.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
퇴계 선생은 특히 매화를 사랑하여 75제 107수에 달하는 시를 남겼으며, 그중 69제 91수가 매화시첩에 수록되어 있단다.
퇴계선생이 교육용으로 제작한 혼천의와 선기옥형의 일부가 남아있는데 이 유물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천문기기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담장밖 오래된 매화나무는 꽃봉오리가 통통해지고 있었다.
퇴계선생이 산책하던 곳 천연대에서 따스한 햇살과 함께 안동호의 윤슬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있기도 하였다.
천연대는 시경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는데 마침 하늘에솔개가 날고 있었다.
유유히 하늘을 나는 솔개.... 3마리를 보았다.
주차장으로 향하며....
도산서원, 계절별로 둘러보고 싶은 곳이었다.
매화꽃이 필때, 모란꽃이 필때, 왕버들 잎이 나올때 등......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퇴계종택이 있었다.
원래의 가옥은 없어졌으며, 지금의 가옥은 퇴계의 13대 후손이 1926~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라 한다.
퇴계선생고택안에 추월한수정 정자가 있었고 안채로는 들어갈 수 없어 바로 나와 이육사문학관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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