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7일(목)
새마을금고 산악회를 통해 합천 해인사와 가야산 소리길 트레킹을 다녀왔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 경내도 둘러 보았고 홍류동계곡을 따라 걷는 가야산 소리길은 걷는 내내 계곡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2023년 산림청 선정 100대 명품숲으로 인증 받았다고 한다.
커다란 바위와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홍류동 계곡,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이었다.
오전 10시 30분경 해인사 입구도착 --> 해인사 --> 성보박물관 --> 가야산 소리길 --> 오후 2시 30분경 황산주차장 도착
해인사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2개나 있었다.
해인사 장경판전는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팔만대장경은 2007년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인사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통도사(불보사찰-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곳), 송광사(승보사찰-예로부터 이름난 스님들이 많이 있었던곳)와 더불어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해인사는 법보사찰(팔만대장경을 보관)로 유명하다고 한다.
일주문앞에는 국화꽃 장식이 되어 있었으며 당간지주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오래된 나무들이 양쪽에 늘어서 있었는데 아름다운 길이었다.
이 고사목은 신라 40대 애장왕 3년(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이 은덕에 감사하며 두 스님이 수행하던 자리에 해인사를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때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단다.
이 느티나무는 1,20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하여 오다가 1945년 수령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단다.
'해인총림' 현판이 걸려있는 봉황문(사천왕문)
소원을 적고 국사단(산신과 토지신을 모신 곳)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원나무도 있었다.
'해동원종대가람' 라고 쓰여 있는 해탈문.
이 문은 중생계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즉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감을 의미한다고 한다.
'구광루'는 부처님이 아홉 곳에서 설법할 때 백호에서 빛이 나와 세계를 비추셨다는 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 들어서니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얼른 범종루쪽으로 향하였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는 범종루에서는 스님이 법고를 치고 있었다.
법고는 절에서 예불과 의식을 행할 때 치는 큰 북으로 법고치는 풍경은 처음 보았다.
해인사 스님들의 법고 치는 솜씨는 예전부터 최고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큰 울림으로 전해져 왔다.
법고가 마무리 된 후 큰 종인 범종을 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 산사에 울려퍼지는 북과 종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사물 의식은 각각 지옥 중생(범종)과 네발 가진 짐승(법고) 물고기 등 물속 생명(목어), 날짐승(운판)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란다.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중문의 주련.
청백가풍 즉사즉리 - 맑고 깨끗한 가풍, 사물이 곧 이치이니라
<장중삼층석탑과 석등>
장중삼층석탑은 불상을 모신 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며 해인사 창건 당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석가모니를 모시면 대웅전, 화엄종의 주불인 법신불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대적광전이라 한다고 한다.
대적광전에는 성철스님의 열반 31주기 추모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성철스님(1912~1993)은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8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만 수행을 하였다고 하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로 유명하다.
대적광전 뒷쪽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이 있었다.
보안당(팔만대장경을 읽음으로써 두루 관찰하는 눈이 생긴다는 뜻)
장경판전은 세계유일의 대장경판을 보관한 건물이며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으로 해인사의 현존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1488년 조선 초기에 건립된 후 한번도 화재나 전란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장경판전 건물 내부는 온도.습도 조절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로 가장 우수함을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단다.
장경판전 법보전과 수다라장은 건물 앞면과 뒷면에 각각 크기가 다른 창살을 통해서 들어온 바람이 건물 내부 전체에 골고루 퍼지게 한 후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었으며, 장경판전 내부 바닥에는 황도, 강석회, 숯, 소금이 차례로 다져져 있어 대장경판을 보관할 수 있는 최적의 온도.습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재조대장경은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고종 38년(1251)까지 총 16년에 걸쳐 조성하였으며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자 국난극복을 위해 다시 대장경을 조성하였으며 부처님의 8만 4천 법문이 수록되어 있다 하여 '팔만대장경'이라부른다 한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현존하는 대장경 가운데 가장 완벽한 대장경이며, 새겨진 글자는 마치 한 사람이 새긴 것처럼 모두 동일하여 추사 김정희는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고 감탄하였을 정도란다.
총 81,352판으로 경판을 전부 쌓으면 3,000m가 넘어 백두산(2,744m)보다 높고 나란히 놓으면 60km나 된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의 앞쪽 건물은 수다라장(경전을 집대성한곳)이라는 현판이 뒷쪽 건물에는 법을 설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법보전이 있었다.
장경판전 뒷쪽으로도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다.
대적광전 뒷쪽 풍경으로 중앙 계단을 오르면 장경판전으로 이어진다.
장경판전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주는 포토존에서......
<독성각 >
독성은 스승의 도움 없이 혼자 깨우쳐 성인이 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태풍에 쓰러지기 전의 학사대 전나무와 현재의 학사대>
학사대는 "신라말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857~?)선생이 해인사에 머물며 집필하고 말년을 보낸 장소"라고 삼국유사.삼사기에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는 곳이란다.
이곳에 평소 짚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꽂아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성장하게 됨을 기이하게 생각하여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단다.
이 전나무는 역사.생물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 되어왔으나 2019년 태풍 링링 피해로 부러지면서 생물학적 가치를 잃게 되었으며, 해인사에서는 유서가 깊은 이곳에 최치원상을 조성하였단다.
생명을 다한 전나무를 활용하여 밑둥은 최치원상 좌대로, 나뭇가지는 이곳을 찾는 참배객들이 펀히 앉아 사색할 수 있도록 의자를 만들어 2022년 10월 21일에 제막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단다.
최치원선생이 바라다 보는 풍경......
겹쳐보이는 전각의 지붕들이 멋스럽다.
옆자리에 앉았던 분과 동행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였다.
11시 50분경 이곳을 지나치고 있었는데 동행했던 분이 공양간에서 밥을 먹고 가자고 하여 들리게 되었다.
마침 공양시간이라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정갈하니 맛있었다.
아름다운 단청.
일주문을 나서기 전......^^
해인사는 광복 후 한국전쟁 때 위기를 맞게 되는데 1951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퇴각하지 못하고 남은 1천여 명의 북한군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게릴라 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에 UN군에서는 폭격기 4대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공군 편대장이었던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키려고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이로써 해인사는 폭격당할 위기를 넘기게 되었고 2002년 6월 해인사 삼선암 입구에 그를 기리는 공적비를 세웠단다.
해인사에서 큰길까지는 약 1km.
천천히 걷기 좋은 길이었다.
단체 외국인 관광객들도 볼 수 있었는데 눈이 마주쳐 미소 지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니 "안녕하세요~" 하고 답하였다.
서울에서도 멀리 떨어진 이곳 해인사까지 찾게 된 연유가 궁굼하기도 하였다.
성보박물관은 불교 전문 박물관으로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불교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운영하고 있단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국내 산사(山寺) 7곳 중 마지막으로 법주사 성보박물관이 지난 9월 24일 개관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국내 산사(山寺) 7곳>
통도사(경상남도 양산시) 부석사(경상북도 영주시) 봉정사(경상북도 안동시) 법주사(충청북도 보은군) 마곡사(충청남도 공주시) 선암사(전라남도 순천시) 대흥사(전라남도 해남군)
박물관도 잠시 둘러보았다.
겸재 정선(1676~1759)의 <해인사도> 간송미술관 소장
해인사를 둘러보고 그림을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 대적광전, 구광루 등이 보였다.
홍류동 계곡을 따라 해인사를 향해가는 선비의 모습도 단순한 선으로 잘 표현을 하였다.
<해인사 영산회상도 - 보물 제1273호>
1729년(영조 5년)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하여 그린 그림으로 그림에 기록된 글로 화가와 제작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해인사 범종>
이 범종은 1766년(영조 42년)에 조성하였던 것을 1864년(고종 원년)에 다시 주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4년 구광루 2층에 있던 종루에서 그 역할을 다하다가 1984년 본종각과 범종을 새로이 불사해 조성하며 교체되었다고 한다.
인연 - 해인사와 조선왕실(2024. 10. 15. ~ 2025. 1. 30.) 특별전도 둘러 보았다.
해인사는 창건 당시부터 신라왕실과의 인연으로 시작되었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도 왕실과의 인연이 이어졌다고 한다.
<자수수복문병풍> 조선후기, 비단에 자수
장수와 복을 기원하기 위해 '수(壽)'자와 '복(福)'자를 10폭에 걸쳐 수놓았다.
1~5폭에는 '壽' , 6~10폭에는 '복'을 36자씩 배치하여 총 360자를 수놓았는데 조선 후기 상궁들이 무병장수와 다복(多福)을 기원하여 해인사에 공양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단다.
아름다운 자수 병풍이었다.
<청색 운보문단 솜 중치막>
1622년, 광해군이 착용하였다는 중치막, 문양이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단풍이 든 늦가을 풍경도 보고 싶은 해인사였다.